본문 바로가기

중국/베이징

베이징 자유여행 팁 #03 (자금성1 외조,내전) ver051216

자금성 현존하는 왕국으로는 세계최대규모의 왕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중국 최고의 관광지이다.

고궁 (자금성) 사이트 (중문/영문)   http://www.dpm.org.cn/    
베이징관광국 고궁(자금성) 안내사이트 (한글)  http://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2

자금성의 이름의 유래

중국에서 천자의 거처가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에 있어 그곳을 기점으로 우주가 움직인다고 믿었기에 이를 상징하는 뜻에서 '자(紫)'를, 
황제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금(禁)'을 사용해 자금성이라고한다,
자금성은 한개의 궁이 아니라 자금성에 있는여러개의 궁의 모임으로 도시개념으로보아서 
영어로 포비든시티 (Forbidden City)라고 불린다.

자금성은 소장한 문화재가 정말 없다는건 알고 방문하는게 도움이됩니다.
정말 자금성은 건물을 보러가는거지 원래 있던 명청대의 소장품들은 
중화민국(대만)에 고궁박물원이나 천안문관장동편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만 고궁박물원을 먼저 기술한 이유는 유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자금성 가는방법

북경지하철 천안문동( 天安门东 Tian'anmen East) 역 D B출구이용하는게 가장 편합니다.
자세한설명은 천안문 에관한 글울 참조하세요
(어차피 자금성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안문으로 가야합니다..)

자금성 입장료 및 비용

자금성 입장료  60위안

별도 관람구역 입장료 

시계박물관입장료 10위안
영수궁권역입장료 10위안 

오토가이드대여비용(선택사항)
중국어판            20위안
영어/한국어판     40위안
(자금성은 보증금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보통 50위안의 보증금이 있다.)

 
오토가이드는 이렇게 생겼다.

이쪽은 뒷면이고 GPS로 관람안한곳은 불이 켜져있고 관람한곳은 불이 꺼진다.
그리고 현제 위치한 곳은 불이 깜빡인다.

앞쪽에는 콘트롤러가 있는데 대여할때 자동으로 안내를 해주니 만지지말라고 한다.
그이유는 잘못눌러서 오작동하면 다시 대여소로 와서 세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으로 자금성에 오게된다면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이드를 빌려보는걸 추천한다.
일단 이게있으면 설명을 듣고 하나라도 자세히 보게된다.

아니면 자금성에대해서 공부하고 오거나..하는걸 추천한다.. 
이게 뭐하는건물인지 뭘봐야 하는지알고 보는거랑 
그냥 유명하니까 보는거랑은 하늘과 땅차이니까.

물론 한국어 판이라고하지만 연변어판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연변 사투리에 북한말투로 이야기하는데..좀 웃기기도하다..
"****있지 않겠습니까..." 라는 표현이 정말 많이나온다.


추천 관람경로


일단 오문으로 입장해서 


1. 임금의 집무전인 외조인 태화전,중화전,보화전과
   후궁인 건청궁,교태전,곤녕궁 을보고

2. 어화원을둘러본다음

3. 서6궁(저수궁,익곤궁,영수궁,태극전,장춘정,함복궁)을둘러본후

4. 영수궁 구역을 둘러보는것을 추천드립니다.

시간이 된다면 
동6궁이나 복성전의 시계전시회를 보는것도 괜찬겠지만.
그다지 볼것은 없어서 꼭들를 필요는 없다..
(특히 봉성전은 별도의 입장료까지 내야하므로 )

영수궁 구역은 반드시 입장료를 내더라도 입장을 추천한다.
영수궁구역은 추가 입장료를 내는 만큼 사람이 적으며
(정말 10위안 더내야 한다는게 저항이 큰듯하다.)
그리고 사진찍을 만한곳도 많다..

외조
외조란 왕이 머물렀던 공간 즉 내정의 반대 말로 쓰였던 공간으로 주로 업무나 집무 학문을 보던 공간을 말한다.


자금성의 입구인 오문(午門)입니다.

천안문이 황성의 정문이긴하지만 자금성의 정문은 아니고 궁의 정문은 우문입니다.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이고 여기서부터 자금성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구역입니다.
입장권은 단문을 들어오기전 서편으로 입장권을 구매하는곳이 있습니다.
오른편 아래 보이는 곳은 전자가이드 대여하는곳입니다.
(현금으로만 계산됩니다..중국은 카드계산이 되는곳이 정말 적습니다.)


태화문입니다.

태화전의 전문으로 중첨헐산정(重檐歇山頂)에 정면 9칸, 측면 3칸, 높이 23.8m, 면적 1300㎡이다. 앞에는 명당수 역할을 하는 내금수하(内金水河)가 흐르고 있다. 1420년(영락 18)에는 봉천문(奉天門)이라 했다가 1562년(가정 41) 황극문(皇極門)으로, 다시 1645년(순치 2) 태화문으로 개칭했다. 1886년(광서 14)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94년(광서 20)에 중건되었다. 태화문의 좌우에는 각각 정경문(貞慶門, 명나라 때는 홍정문(弘政門))과 소덕문(昭德門, 명나라 때는 선치문(宣治門))이 있다.




태화전 太和殿原状陈列 이다.
자금성에 오면 가장먼저 보게되는 건물이다.

자금성의 정전. 중첨무전정(重檐廡殿頂)에 정면 11칸, 측면 5칸, 길이 64m, 너비 37m, 전각 높이 26.92m, 면적 2,368m², 기단 높이 8.13m, 기단까지 합친 높이 35.05m로 중국에 현존하는 궁전 건축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목구조물이다. 
한백옥으로 된 3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72개의 남목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 12.7m, 직경 1.06m에 이르며 이 중 옥좌와 가까운 곳의 여섯 개 기둥은 금박으로 덮여 있고, 지붕 처마에는 10개의 잡상이 있다. 태화전이 자리한 월대에는 황제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일구(日晷)와 가량(嘉量), 장수를 상징하는 청동거북과 청동학, 그리고 동정(銅鼎) 18개가 진설되어 있다. 
1420년(영락 18)에는 봉천전(奉天殿)이었으며 1562년(가정 41) 중건하면서 황극전(皇極殿)으로 개칭했고 1645년(순치 2)에 태화전으로 개칭했다. 
자금성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 여기에 있어서 황제의 즉위식, 국혼, 황후 책봉, 조회 등 국가적인 중대사 때 주로 사용되었다.
태화전 좌우의 담장은 원래 회랑이 있었던 자리였으나 청나라때 화재를 막기 위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중화전 中和殿原状陈列




보화전 保和殿原状陈列  뒷쪽 계단.
역시 황궁이라 으로 장식되어있다.

중화전 뒤편에 있는 전각으로 중첨헐산정(重檐歇山頂)에 정면 9칸, 측면 5칸, 높이 29.5m, 면적 1,240m²이다. 1420년(영락 18)에는 근신전(謹身殿), 1562년(가정 41) 건극전(建極殿), 1645년(순치 2) 보화전으로 개칭했다. 
명나라 때는 황제가 의복을 갈아입는 공간이었고, 청나라 때는 매년 제야와 정월 15일에 황제가 소수민족 왕공대신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789년(건륭 54) 이후에는 이곳에서 전시가 치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궁안에도 공안이....

내전
외전은 왕의 비,반이 머물렀던 공간 으로 주로 왕이 휴식과 개인적인 업무를 보던 곳을말합니다.


건청궁 에서 본 건청문

외조와 내정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문으로 보화전 뒤쪽에 있으며 앞으로는 건청문 광장과 마주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1420년(영락 18)에 지어진 이래 1655년(순치 12)에 중수되었다. 동쪽에는 경운문(景運門), 서쪽에는 융종문(隆宗門)이 있다. 담장 서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이 군기처였다.


건청궁 乾清宫原状陈列

1420년(영락 18)에 처음 지어졌고 1798년(가경 3)에 마지막으로 중건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강희제 때까지는 황제의 침궁이었으나 옹정제 때 침소를 양심전으로 옮기면서 정식 조회를 여는 편전으로 바뀌었다. 
명나라가 멸망할 때 숭정제의 아내 주황후가 이곳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청나라 때는 1722년(강희 61)과 1785년(건륭 50)에 각각 강희제와 건륭제의 천수연(千叟宴)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건청궁이 유명해진 건 옹정제가 시작한 비밀건저제의 무대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곳 옥좌 위에 걸려 있는 순치제의 어필로 된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편액 뒷쪽에 제위계승자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함에 넣어 보관했다가 황제 사후 왕공대신들의 입회하에 함을 개봉해 차기 황제가 즉위하도록 했다. 
부속 전각으로 단응전(端凝殿), 무근전(懋勤殿)이 있다.



건청궁에 유명한 정대광명 현판이다.




교태전 交泰殿原状陈列

건청궁 뒷쪽에 있는 정방형의 평면으로 된 3칸의 전각이다. 황후의 탄신일인 천추절을 축하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건륭제 때 옥새 25과[22]를 여기에 보관하면서 왕조가 25대까지 이어지기를 염원했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런 거 없다. 이외에도 1745년(건륭 10)에 제작한 물시계와 1798년(가경 3)에 제작한 서양식 자명종 시계도 보관되어 있는데, 이 시계는 태엽을 돌리면 지금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곤녕궁 坤宁宫原状陈列


여기까지가 
자금성의 외조와 내정입니다..


1.외조,내전 http://pluswithu.com/72
(저수궁,익곤궁,영수궁,태극전,장춘정,함복궁) 
(시계박물관)


이글은 2016년 05월 10일 최초작성후  2016년05월12일 최종수정되었습니다.